[인터뷰] 김규리 “그림도 저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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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헤매기도 하고, 실패도 해보는 과정이 어쩌면 인생의 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럼에도 내가 내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내 이야기를 내가 하는 것이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자유로웠고, 그렇기 때문에 두렵고 무서웠어요.”
개인전 ‘NaA’로 돌아온 배우 겸 화가 김규리(44)는 50여일의 작업 과정에 대해 “아주 치열했고 고통스러웠으며, 아주 자유로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안그래도 검은 그의 눈동자가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다.
‘NaA’는 나 자신을 길게 부르는 의성어로 유머를 담아 김규리가 붙인 말이다. 2021년 첫 전시 이후 호랑이, 자연 등을 그려온 그는 이번 전시회 주제를 ‘나’로 정하고 오직 자신의 시선으로 발견한 나를 표현했다.
개인전 ‘NaA’를 선보이고 있는 서울 강남구 갤러리 나우에서 김규리를 만났다. 그는 “연기는 메이크업을 하고 카메라 앞에서 준비된 배역을 보여주는 작업이기에 반드시 ‘내’가 아니어도 괜찮다. 하지만 그림 앞에선 솔직해지면 어떨까 하는 게 내 자세”라며 작업 과정을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정해진 지 얼마 안됐어요. 3월 개인전 이후에 전시가 정해져 작업 기간이 50일 정도 밖에 없었죠. 새로운 작업을 위한 주제를 찾는 게 어려웠고, 이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까를 치열하게 고민했죠.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 많이 생각해봤는데, 나 자신을풀어내지 않고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나’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작업 대상을 ‘나’로 정한 뒤, 김규리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피사체였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냈다.
“사실 거울을 보지 않고는 자기 모습을 볼 수 없잖아요. 나인데, 나보다 남이 나를 더 많이 보는 거죠. 나라는 존재를 알기 위해 마음의 거울도 들여다봐야 하고요.”
거울을 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편”이라는 그는 “예전같았으면 얼굴이 부었으면 ‘왜 부었지’ 고민했을텐데 지금은 ‘부었구나’ 하고 받아들이곤 한다”며 “외모적인 부분보다는 ‘오늘 기분은 어떻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등을 생각하며 마음을 많이 들여다봤다”고 했다.
“사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건 그림이지만, 그림을 통해 내 마음 안에 있었으나 잊고 있던 무언가가 다시 올라와서 소통이 되고 공감이 되는 것이거든요. 저 역시 마찬가지죠. 그림 그리는 행위를 통해 내 안의 것을 꺼내어 놓은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이 그림을 통해서 저는 제 이야기를 했지만, 보는 분들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 했어요.”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필요했지만,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건 재료를 찾는 것이었다”고 돌아봤다. 특히 살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밑바탕을 찾아가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고. 그는 “한지에 하면 실패가 너무 많았다. 천 중에서도 린넨, 광목, 노방, 한복천 등 여러 시도를 해봤다”고 말했다.
인물화 자체고 김규리에겐 도전 요소였다고. 김규리는 “(그림을 그리며) 내가 더 숨 쉬어지고 편안한 게 자연이라 자연을 많이 그렸다. 인물화는 한번도 해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었다”며 “한 번호 가보지 않은 길을 이번에 혼자 가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김규리는 표범처럼 잠잠하지만 깊이 있게 응시하는 자신의 모습에서부터 꽃, 뒷모습의 누드, 색면 추상 등 다양한 형태로 은유하여 보여준다. 한국화로 미술을 시작한 김규리인만큼, 이번 전시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에선 추상과 해체 등 현대적인 요소들 외에도 한국적인 요소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머릿 속에 원하는 것이 떠올랐더라도, 구현되는 데 있어서의 한계는 대체로 능력이 아닌 재료에 있었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과정의 고통을 떠올리던 그는 “목에 숨이 턱턱 막히고, 죽을 것 같더라”는 솔직한 속내도 들려줬다.
다양한 장르의 활동에 도전하는 김규리가 느끼는, 다른 작업과 차별화된 미술만의 ‘무언가’도 궁금했다.
“혹자는 저에게 잘 그린다고 해주시는 분도 계신데, 사실 제가 잘 그려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붓을 들고 제가 가장 많이, 자주 하는 말이 ‘난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입니다. 광목 천에 첫 붓을 놓는 순간, 알아요. 아 망했구나. 물이 조금만 들어도 확 번지니까요. 하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면 다른 재료에 했을텐데, 알고도 했어요. 왜냐면, 해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김규리는 “한국화를 계속 그리는 이유는 마음의 수양이었다. 내가 잘 그려서, 드러내기 위해 그리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수양을 위한 거였다. 평소에는 ‘날 할 수 있어’라는 말을 그다지 많이 하진 않는데, 붓을 잡고선 매 순간 ‘할 수 있어’를 되뇌인다. 인생에서도 ‘넌 해낼 수 있어’라고 말하는 순간이 그림 그리는 순간이다. 그래서 자꾸 그리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인도’와 혜원 신윤복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김규리. 하지만 십수년 전의 강렬했던 그 만남 이후 지금까지도 붓을 놓지 않고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를 계속 펼쳐가는 지금 현재의 모습을 결과론적으로 해석하면 그림과 그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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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